신간소개 2013. 12. 11. 08:42




서남동양학술총서 『고려와 원제국의 교역의 역사: 13~14세기 감춰진 교류상의 재구성』은 그간 대중의 관심과 학계의 연구에서 반쯤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원간섭기’ 100년의 고려사를 교역사의 관점에서 조명한 연구서이다. 특히 원의 일방적 수탈 내지 수세적 상거래로 고려-원 관계를 파악한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고려-원 교역의 쌍방향성에 주목한 점, 격동하던 동아시아 교역권의 큰 맥락에서 고려의 위상을 조명한 점, 흩어진 관련 자료를 한데 모아 정밀한 상호관계를 고증하고 실상을 재구성한 점 등은 이 책의 특장이다.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은 한반도인들의 대외활동이 비약적으로 증가해 그 어느 때보다 해외시장에 능동적으로 임했고, 한반도 시장이 세계에 활짝 열린 시기이다. 이 책은 그 배경이 된 것이 역대 어느 왕조보다 광범한 지역을 관할한 원제국이었다는 데 주목한다. 동서 교역을 장려하고 주도한 원을 통해 고려는 서아시아의 거대한 시장과 연결되었다. ‘원간섭기’ 고려 왕들이 원의 대외정책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활용해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고, 이를 발판으로 고려 후기 민간교역이 활성화되었다는 이 책의 논지는 침탈과 수난사라는 인식이 주류이던 고려 후기사 연구에서 진일보한 지점을 보여준다.


일방이 아닌 쌍방의 교류: 고려의 능동적 대응 


13세기 후반 몽골과의 전쟁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한 고려에서 원은 응방(鷹坊)과 둔전(屯田)을 앞세워 엄청난 물자를 적출해갔다. 특히 고려 매를 징발하던 응방은 ‘고기 대신 은과 모시를 먹는 방자한 매를 기른다’는 말이 돌 정도로 원의 대표적 침탈기구로 기능했다. 

이러한 응방과 둔전은 원이 중국 강남 지역의 재원(財源) 편제를 마무리한 13세기 말부터 점차 무력화되는데, 고려는 이를 계기로 대외교역에 나서게 된다. 원의 세력권이 확장됨에 따라 회회인(回回人) 등 새로운 국적의 상인들이 고려를 찾기 시작한 것 또한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고려는 이들과의 거래를 통해 중국을 넘어선 거대한 시장의 존재를 감지했고, 고려 왕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몽골의 물자 징발기구였던 응방을 역이용해 대외무역 투자금을 조성하려는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다. 충렬왕은 응방의 존재를 묵인하는 대신 회회인을 불러 그 관리를 맡기고자 했다. 회회인들이 응방에 집적된 물자를 그들의 무역활동에 출자해 이윤을 얻으면 일정 비율은 고려 정부가 회수하는 방식으로, 응방을 활용한 대외교역을 통해 새로운 이윤 창출이 가능할 것을 계산했던 것이다. 또한 중국 강남으로 상선을 파견하고 중국 무역항의 고율관세를 놓고 협상하는 등, 이 시기 고려 정부의 전략적 사고는 사뭇 돋보이는 바 있다. 이는 13세기 후반 30여년 넘게 고려를 다스렸던 충렬왕의 승부수이자, 대외진출을 본격화한다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또한 동아시아 교역권 내에서 이류시장으로 내려앉은 한반도가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후 충선왕과 충숙왕, 충혜왕 등 고려 왕들은 원과 연결된 서아시아의 상황과 동서 교역에 대해 지식을 축적하고 식견을 넓혔다. 고려와 원, 두개의 모국을 지녔던 이들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고려의 제도를 보호하거나 외국 제도가 고려의 상황 개선에 필요하면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13세기 말~14세기 초부터는 민간인들까지 원으로 건너가기 시작한다. 고려 후기 대외교역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교역의 경로도 다양해졌다. 민간인 상단이나 사신들의 교역도 육로로 들어가 육로로 귀환하던 이전의 방식에서 변화해 육로로 들어가 해상으로 귀환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이런 교역양상 변화에 큰 역할을 했다. 교역을 위해 원제국을 방문하던 상인들을 위해 고려 정부가 발간한 일종의 어학교재인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 등은 그 발간 자체만으로도 원에 가는 고려 상인들의 수가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정부와 민간이 공조해 활발히 활동한 이 교역은 13세기 말 이래 70여년간 전성기를 누리며 지속되다가 원의 몰락과 함께 퇴조하기 시작한다. 


동서 세계간 교역과 원의 역할


고려에 대한 침탈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원의 침공에서 비롯했지만 그 배후에는 당시의 세계사적 변동이 있었다. 12세기부터 이미 동서 아시아의 교류가 본격화되었고, 유례없이 광범위한 원의 세력 확장은 사람과 물자의 흐름에 큰 변동을 가져왔다. 동아시아의 ‘작은 시장’으로서 고려는 그 흐름에서 때로 밀쳐지고 때로 그에 편승하면서 살아남아야 했다. 


외국인의 고려 방문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변동에 따라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고 있었다. 13세기 후반 고려가 원의 침탈로 고통받던 무렵에는 한반도를 방문하던 외국 상인들도 약속이나 한 듯 발걸음을 끊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 회회인 등 새로운 국적의 상인들이 한반도를 찾기 시작한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왕성해진 진주 거래의 보조시장으로서 고려를 활용했고, 상거래를 넘어 원 조정의 채무를 피해 오는 도피처로 활용하기도 했다. 인도와 이란 지역으로 갈 몽골인 노예를 고려에 매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원제국의 판도가 넓어지고 동서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서아시아와 서역 상인들의 교역범위가 확대된 결과이다. 고려 왕들은 이를 적극 활용했고, 원의 수탈이 줄어든 기회를 틈타 외국 상인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였다.


인도와 이란에서 고위급 대표들이 찾아오고, 중앙아시아-서아시아-러시아를 잇는 광대한 노예 거래망을 오가던 상인들도 한반도를 찾아왔다. 원제국과 일본을 오가던 이른바 ‘신안 해저 유물선’류의 선박들도 한반도 인근을 통과하며 가끔 들렀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해외 시장에 대한 고려인들의 시각도 새로워졌지만, 한반도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눈도 달라지게 된다. 고려는 더이상 원제국의 복속 아래 신음하는 나라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시장으로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한반도는 필요한 물산의 공급 후보지이자, 동서의 상인들이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자, 동서 무역품의 구매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런 변화의 배경으로 원제국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간 원은 고려의 모든 것을 제약하고 통제한 존재로만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실상 원제국이야말로, 12세기 후반 이래 소외되어가던 한반도 시장이 동서 교역주체들에게 주목받고, 13세기 말~14세기 초 고려의 대외교역이 다시 중흥기를 맞게 된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13~14세기 원은 명실상부한 동서 교역의 중심축이었기 때문이다. 원의 세력 판도와 정치상황에 따라 동서 아시아 상인들의 고려 방문 빈도와 양상이 달라졌으며, 고려는 이러한 동향을 주시하며 그에 대응하여 자국의 활로를 개척했다. 


제국의 몰락과 동아시아의 격변 속에서 


고려 왕과 정부의 능동적이고 실용적인 대응을 바탕으로 활성화된 민간교역은 14세기 후반에도 이어진다. 한번 시작된 활기는 좀처럼 꺼질 줄 몰랐다. 중국 강남 상인들의 고려 방문이 재개되어 그러한 열기를 부채질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원제국의 몰락에 따른 동서 교역판도의 변화로 일대 전환을 겪는다. 원제국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변동이 심화되자 원보초(元寶?, 지폐) 제도가 붕괴했다. 고려 정부는 그간 축적해둔 원보초를 더이상 교역자금으로 쓸 수 없게 되었고, 기황후 세력의 지나친 공물 요구로 재정까지 악화된 탓에, 중국 강남과 요양(遼陽)의 통상제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공민왕대 말기에는 코코테무르를 통해 원의 대도(大都) 시장과 직접 교류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원제국 몰락 뒤에는 해상통제를 단행한 명조가 들어서면서 고려는 더이상 동서 교역과 연동된 기존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고려 내부적으로도 명의 입김을 받아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억상(抑商)’논리가 등장했고, 관료들의 무역은 금지된다. 14세기 말까지만 해도 정부의 단속과 통제에도 계속되며 과열 양상으로까지 치달았던 민간의 대중국 교역도 급기야 조선의 개국과 함께 침체기에 접어든다. 


이 책은 13세기 후반(1260~80년대), 13세기 말~14세기 초(1290~1310년대), 14세기 전반(1320~40년대 전반), 14세기 중?후반(1340년대 중반~1360년대)의 네 시기로 나누어 동서 교역과 고려의 대외교역에서 원의 역할, 동서 교역의 변화상, 고려 왕들의 능동적 교역정책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룬 100년 교역사를 촘촘히 재구성한다. 원제국의 압도적 영향 속에서 독자적 시야로 생존의 활로를 개척한 고려 후기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성과이다.

posted by 아마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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