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2014. 3. 28. 14:20



<< 책 소개 >>


새로운 〈이방인〉이 나왔다. 카뮈의 〈이방인〉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번역돼,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걸맞은 역작의 진가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기존 번역에 문제가 많았던 것.


사실 카뮈의 〈이방인〉은 기묘한 역설을 안고 있었다. 이방인의 말뜻 그대로 낯설고 이상하게 다가와서 새로운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요령부득의 작품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은, 작품에 덧씌워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권위를 털어 내면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독자의 의구심과 개연성을 봉쇄해 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의 독법을 문제 삼거나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운운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원래 <이방인>이 얼마나 재미있고, 잘 읽히는 소설인지는 당시 원고를 처음 접했던 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컨대 당시 프랑스 출판물을 담당했던 독일 측 수석고문 게르하르트 헬러는 갈리마르 측에서 보낸 원고를 처음 접하고, 이런 소감을 내놓는다.


“그날 오후 <이방인> 원고를 받은 즉시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4시까지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문학에 일대 진보를 가져올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갈리마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_게르하르트 헬러(허버트. R. 로트먼 저, 한기찬 역, 한길사, <카뮈, 지상의 인간>, 481쪽)


그렇다면 저들이 느꼈던 저 감동을 우리는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문제는 번역에 있었던 것이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김화영 역, 민음사, 135쪽)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이정서 역, 새움, 161쪽)


사형을 앞둔 주인공 뫼르소의 심리를 묘사한 대목이다. 기존의 번역은 위 세 문장이 긴밀한 의미망을 형성하지 못하고 각기 따로 논다. 작가는, 밤 12시에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뫼르소는 그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는 심리적 상황을 묘사한 것인데, 기존 번역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한밤의 경계선”(자정)을 살리지도 못했을뿐더러 ‘죽을 날이 다가왔다’는 “사이렌” 소리의 은유도 전혀 건져 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불과 몇 시간 뒤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할 상황에서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절박한 비애와 처연함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고 연민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여기서 왜 갑자기 어머니를 떠올렸을까, 하고 반문하게 된다. 빼어난 문학작품이 번역을 거치면서 요령부득의 문장으로 둔갑돼 버렸다. 나쁜 번역의 전형이다.


위 문장의 번역 오류는 또 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는 우리말에 없는 표현이다.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에 오래간만이면 오래간만이고 처음이면 처음이지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말이 안 되는 비문인 셈이다. 


놀랍게도 이런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 책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역자노트」는 기존 번역의 오류를 세세히 지적하는 데 바쳐져 있다. 역자에 따르면, 가장 큰 문제는 등장인물의 왜곡이다. 생양아치처럼 묘사된 레몽을 비롯해 마리의 순진성, 셀레스트의 재치, 검사의 노회함, 변호사의 심리적 변화 등이 소설의 전개와 아무 상관 없이 잘못 번역됨으로써 독자들이 작품의 재미와 구성의 긴밀성,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서 오는 미적 쾌감 등을 모두 놓치게 만들었다는 신랄한 지적이다. 요컨대, 기존의 번역은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을 평면적이고 단선적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비판이다. 


그 때문일까, 역자는 다소 래디컬한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기존 번역자의 선입견과 오해, 무지가 만들어 낸 별종(변종)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번역과 「역자노트」를 부지런히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주장이 결코 과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주인공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하는 1부 끝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그래서인지 「역자노트」를 따라 읽으면 기존의 〈이방인〉이 지녔던 기묘한 역설의 정체를 깨닫게 된다. 이 땅에 〈이방인〉이 번역된 지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독자들은 ‘불문학계의 대가’라는 번역자의 권위(김화영 교수는 카뮈 연구로 프랑스 현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에 짓눌려 번역이 잘못됐을 거라곤 생각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탓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니까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작품의 권위와 번역자의 권위에 이중으로 짓눌려 사태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번역의 결정적인 공로는 꼼꼼하고 정밀한 번역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으로써 주제에 접근하는 통로를 자연스럽게 열어 두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인공의 살해 동기를 강렬한 태양 때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펼쳤다. 왠지 부조리 문학에는 그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중삼중의 연막을 치면서 작품의 의미를 더욱더 오리무중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자는 그게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주인공이 쏜 다섯 발의 총알 중 첫 발은 아랍인의 칼날에 비친 햇빛의 위협에 대한 정당방위로 쏜 것이며, 나머지는 “위장된 도덕, 종교, 권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본문 p.209)라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 뫼르소의 살해 동기를 깔끔하게 정리한 뒤 역자는 “하늘로 난 채광창”의 은유와, 순교자적 의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처형대” 등에 대한 기존 번역의 오류를 섬세하게 톺아보고 바로잡아 나가면서 작품의 의미를 본래대로 바로잡아 놓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책이 역자의 첫 번역이라는 점이다. 최근 서울대 김윤식 교수의 표절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를 펴내기도 한 역자는, 우리의 문화 수준을 고려하면 국내의 번역문학이 더 정밀해지고 꼼꼼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 책이 우리의 번역문학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희망했다. 이래저래 국내 번역문학에 새로운 계기가 될 책이 분명해 보인다.


<< 저자 소개 >>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13. 11. 7.~1960. 1. 4.


1913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포도주 제조공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사망했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말더듬이가 되었다.


일찌감치 앙드레 말로를 문학적 스승으로 여기고 잡지에 글을 발표하곤 하던 그는 고등학교 담임이었던 장 그르니에의 영향을 받아, 1930년 알제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작가이자 기자로 활동하며 극단을 경영하는 한편, 프랑스의 식민 지배로 인해 알제리인이 겪는 고통을 고발하는 데 힘썼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에 대항해 레지스탕스 잡지 〈콩바Combat〉의 편집국장으로 저항운동을 펼쳤다.


1942년, 그의 첫 소설 〈이방인L’etranger〉이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며, 1957년 44세의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3년 후, 문학인생의 정점에서 갈리마르 출판사 사장의 조카인 미셸 갈리마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알베르 카뮈를 위한 부고

사람들은 말하겠죠. 그는 너무 젊었다고, 아직은 끝낼 시간이 아니라고.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오래냐(how long)’가 아니라 ‘얼마나(how much)’입니다. 아니, 정리하자면 ‘무엇을(what)’이죠. 그의 문이 닫혔을 때, 그는 죽음을 자각하고 증오하면서 생을 헤쳐 나가는 모든 예술가들이 쓰고자 하는 것을 이미 써놓았습니다. ‘나는 여기 있었다’라고. 그러니, 아마도 그는 그 반짝이던 찰나에 자신이 성공했음을 알았을 겁니다. 다른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_윌리엄 포크너(194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posted by 아마데우스
:
신간소개 2014. 2. 23. 17:59




<<책 소개>>


지적인 수다와 지독한 사랑, 그리고 ‘빠리’

파리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 일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그때 그 순간 삶은 살아갈 만한 그 무엇이었고, 사랑할 만한 그 무엇이었다.”


한민일보 장인철 기자는 야근을 지겨워하던 서울에서의 삶을 벗어나 난생처음 프랑스 파리에서 살게 된다.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인 ‘유럽의 기자들’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모두 같았다. 저널리스트, 그리고 파리의 이방인. 값싸고도 말할 수 있는 센티멘털리즘과 멜랑콜리가 그곳에는 있었다. 그 센티멘털리즘과 멜랑콜리의 힘으로 함께 술을 마셨고, 노래를 불렀고, 춤을 췄고, 뽀뽀를 했고, 울었고, 싸웠고, 화해했다. 그리고 일했다. 남의 삶을 엿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광고 충동, 끊임없이 기록하는 습관…… 기자의 운명을 열렬히 받아들였던 그들은 ‘진짜’ 기자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인철은 한 여자를 만났다. 언론인 연수 센터에 들어서던 첫날, 친절하게 인철을 안내해 주던 여자. 오렌지 빛 외투, 큰 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 바다를 담은 듯한 눈동자…… 헝가리에서 온 동료 기자 주잔나 셀레슈였다. 자주 울었고, 자주 분노했고, 자주 깔깔거렸던 주잔나. 인철은 따뜻하고 유쾌한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고, 그녀와 가장 자주 어울리는 사이가 된다. 서른다섯 살의 이혼남 장인철과 서른일곱 살의 이혼녀 주잔나. 인철은 추위를 즐기지 않았지만 주잔나가 파리에 있다면 그곳의 추위도 견딜 만한 것이 되었다. 그는 주잔나의 아들 토마슈와 만나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기도 한다. 나란히 서서 함께 파리의 밤을 응시하던 인철과 주잔나, 그들 사이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작가 고종석의 첫 소설, 어쩌면 마지막 소설… 

21년 만에 새롭게 태어난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


‘흠 잡을 데 없는 문장력을 지닌 스타일리스트’, ‘가장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 고종석. 그는 2012년 가을, ‘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 언젠가 되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접는다’는 말로 절필을 선언했다. 직업적 글쓰기를 접은 이후에 출간되는 이번 책 『빠리의 기자들』은 그의 첫 책이자 첫 소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마지막 소설이기도 하다. 앞서 발표한 글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 명문장가 고종석이 21년 만에 처음으로 개작을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래서 이 소설을 통해 파리와 서울, 1990년대와 2014년이라는 시공간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파리라는 도시의 이방인이었던 주인공이 보여주는 ‘진짜’ 기자의 삶,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난 두 남녀의 연정. 고종석의 아름다운 한국어 문장이 전하는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가 애틋하다. 



 

<< 저자 소개 >>


고종석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와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법학과 언어학을 전공하고, 서른 해 가까이 신문기자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독고준』 『해피 패밀리』, 소설집 『플루트의 골짜기』, 사회비평집 『서얼단상』 『바리에떼』 『자유의 무늬』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경계 긋기의 어려움』, 문화비평집 『감염된 언어』 『코드 훔치기』 『말들의 풍경』, 한국어 크로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어루만지다』 『언문세설』 『국어의 풍경들』, 역사인물 크로키 『여자들』 『히스토리아』 『발자국』, 영어 크로키 『고종석의 영어 이야기』, 시 평론집 『모국어의 속살』,  여행기 『도시의 기억』, 서간집 『고종석의 유럽통신』, 독서일기 『책 읽기, 책 일기』 등이 있다.



posted by 아마데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