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2013. 12. 11. 08:17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태곳적 마음의 고향으로 떠나는 시적·철학적 생태에세이 


영화〈솔라리스〉에서 지구를 떠난 과학자들은 통풍구 앞에 붙여놓은 종이테이프의 펄럭이는 소리로 향수병을 달랜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듯한 소리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작가 브루스 채트윈은 요람을 흔들며 엄마들이 내는 쉬이∼ 소리가 아이를 잠재우는 데 효과가 있는 건 이 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태곳적 인간 삶의 보호막이자 밤의 피난처였던 나무와 숲은 수백만 년이 흐른 지금까지 모성의 이미지로 우리 유전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삶의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고 더 큰 자연과 공명하며 사는 지혜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매혹하는 나무에게 인간이 품는 특별한 애정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


《수목인간》은 우리가 오랜 세월 깃들여 살아온 나무의 가치를 역사적·철학적·생태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구 생명의 요람이자 공존·공생·성숙·포용 등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존재로서 우리 곁을 지켜온 나무를 통해 뻗은 사유의 가지를 14개의 장으로 펼쳐낸다. 


여기에 정현종, 허만하, 백석, 오규원, 파블로 네루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등 저자가 사유의 길잡이로 삼은 시인들의 시 마흔여섯 편을 소개함으로써 시인의 참신한 시선에 포착된 인간과 자연, 그 새로운 관계의 미학을 감상해보길 권하고 있다. ‘수목인간’은 지구생물계의 꽃인 나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책임의 삶, 공조共助의 문화, 지속가능한 혁신의 길을 모색해온 저자가 자연의 한 매듭으로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생존 조건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저자는 생태맹生態盲에 빠진 우리 시대의 자연관에 일침을 가하고 소비자본주의에 물든 삶의 형태를 바꿔야 함을 이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자연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한때 자연을 정복했다고 믿은 오만함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각종 자연 재앙과 생태 위기 앞에서 무력함으로 변한 지 오래다.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요청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너무나 미약한 존재로서 인간이 자연 앞에서 느꼈던 경이와 겸허의 태도는 아닐까. 자연과의 공존·공생을 지향하는 생태학적 사고 전환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적 성찰과 번뜩이는 예지, 투명한 시의 언어로 빚어낸 사유의 풍경 속에서 나무와 마주한 저자가 펼쳐내는 생태평화의 길이 이러한 태도 변화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인간은 수목인간이다


인간은 수목에 감싸인 채, 의존한 채, 보다 폭넓게는 자연에 감싸인 채, 의존한 채 살아왔고 살아갈 운명 속에 있다. 인류의 생물학적 생존, 물질적 생존, 정신적 생존이 나무와의 오랜 공존 속에서 이루어져왔음을 우리가 모르지 않는바, 우리 모두를 ‘수목인간Homo Arboris’이라 호명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자연에 의존하지 않은 인간이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 이는 단순히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은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목인간’이란 나무와 나무를 둘러싼 더 큰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인간 그대로를 드러내는 말이다. 더불어 타 생물들을 포용하고 그들과 공생할 줄 아는 나무의 미덕을 지닌 인간상을 지향하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는 모든 것이 이 한 단어 속에 녹아 있다. 인간은 수목인간이다. 이보다 더 명징하게 지구라는 큰 생명 안에 살아온 인간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나무에게서 인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다


나무는 성숙하는 일이 실제로 발상함을 당신 눈에 보여주네 / 꽃이 터지고 이윽고 시듦을 / 그늘이 태양의 속도에 따라 제 몸을 뒤틂을

                                                        -로셸 매스,〈전언을 기다리며〉에서

 

인류사는 문명화 과정 중에 사용한 이기利器의 재료에 따라 석기, 청동기, 철기 등의 시대로 구분된다. 그런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재료는 아니지만 인류가 오랜 시간 가장 중요하게 사용해온 물질이 있다. 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가 19세기 이전의 모든 문명은 ‘나무의 자국’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인류는 오랜 시간 나무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 살아왔다. 철기나 청동기와 달리 자연 상태에서 바로 구할 수 있었던 나무는 유용한 가재도구를 비롯해서 정착생활에 필요한 농기구나 거주 공간인 집, 마차와 같은 이동 수단, 악기를 만드는 재료로서 인간의 문명화에 큰 기여를 했다.


이 책의 1부 ‘나무에 깃들여 산다는 것’에서 저자는 나무와 한 몸 되어 살아온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우리 삶의 기반을 이루며 인지하지 못할 만큼 가까이에서 우리 곁을 지켜온 나무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그런데 나무의 소중함은 나무가 우리 삶에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무는 인간에게 인간다움의 가치를 일깨우는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로 솟아 옆으로 퍼지는’ 나무의 생태에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기 삶을 드높이면서도 타인을 향해 뻗어나가는 자기 초월성을 발견하는가 하면, 여러 존재들을 품고 살아가는 나무에게서 고대 로마인들이 인간다움의 준거점으로 삼았던 ‘피에타스pietas’의 현현을 보기도 한다. 피에타스란 공동체와 부모에 대한 의무감을 뜻하는데, 이러한 책임은 ‘나’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 우리의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윤노빈과 훔볼트가 인간 존재의 목적을 나무의 생태에 비교해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40∼41쪽)


저자는 또한 집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필리아oikophilia의 진정한 실천을 나무를 통해 확인하기도 한다.(60쪽) 고대인들에게 집은 오늘날처럼 사사로운 삶이 일어나는 내폐적內閉的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집은 집을 둘러싼 타자들과 맺는 관계와 사랑 속에서 확장된다.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정현종,〈나무에 깃들여〉)인 나무는 다른 존재들을 품고 오이코필리아 본래의 의미를 실천해온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나무의 생태를 통해 인간다움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저자는 지구생태계 속에서 여타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 삶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1부를 통해 깊이 성찰한다. 



나무라는 기적이 일으킨 지구 생명의 역사


저, 잿빛 나무를 보라. 하늘이 / 나무의 섬유질 속을 달려 땅에 닿았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사물의 맥락〉에서 


약 27억 년 전 지구에 생명의 기적을 불러온 미소생물이 바다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자기 증식 능력을 갖추고 광합성 활동의 부산물로 산소를 배출하기 시작한 시아노박테리아가 그것이다. 육상 식물의 선조 격인 이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지구는 점차 다양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은하계 유일의 행성으로 변모해갔다. 이 책의 2부 ‘나무의 에콜로지와 지속가능한 미래’에서 저자는 나무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그 생명 활동을 지구적 차원에서 조명하며 나무의 생태학적 가치와 숲 복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나무가 지구에서 행한 기적의 핵심은 광합성 활동에 있다. 이에 대해 제12차 세계 광합성 회의에서는 뻔한 과학적 정의 대신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매일같이 우리에게 빵과 와인을, 우리가 들이쉬는 산소를 주고,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생명들을 참 간단하게도 지탱시키는 식물의 기적.”(170쪽) 약 8분 동안 1억 5,000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태양에너지를 고작 수초 만에 지구 생물을 먹여 살리는 화학적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이 놀라운 활동에 걸맞은 정의이다. 


나무는 또한 그를 둘러싼 더 큰 자연과 공명하며 혹은 “에로스의 춤”을 추며 지구의 생화학적 과정을 혁신하고 지구 생물권을 풍요롭게 하는 데도 일조했다.(163쪽) “나무의 내부가 새로운 바깥이 되는”(허만하,〈나무를 위한 에스키스〉) 그 기나긴 과정이 지구 생명의 역사와 겹쳐져 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선사해준 존재. 이런 귀한 존재가 어떻게 우리 곁에 존재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기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녹색의 귀한 광맥”(프랑시스 퐁주,〈동물과 식물〉에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좀 더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나무가 앞으로도 본연의 삶을 통해 지구생태계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말이다. 



진정한 평화는 생태평화에 있다 


어린 꽃이여― 내 만일 네가 무엇인지를, 뿌리까지 모두 속속들이 /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면 / 나는 신이 그리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으련만

                                  -앨프리드 테니슨,〈갈라진 벽 틈에 피어난 꽃 한 송이〉에서


우주 만유를 뜻하는 삼라森羅는 나무들이 끝도 없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모습을 그린 삼森에 ‘벌여놓다’라는 뜻의 라羅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다. 무서우리만치 엄숙한 감정을 뜻하는 삼엄森嚴 또한 숲에서 연유한 단어다. 우리에게 무한한 우주 그 자체이자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던 존재, 그런데 이성과 기술과 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면서부터 숲은 야생의 생기를 잃고 이런저런 생물자원이 군집해 있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미개발지, 미개척지, 자원 매장지가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숲이고 이를 우리가 필요한 만큼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을까?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한 19세기에 이미 일부 임학자들 사이에서는 자연의 한계를 지적하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숲의 재생 기능과 사이클을 고려해 그에 맞는 임산물의 양을 조절·유지해야 한다는 ‘보속수확保續收穫’이라는 개념도 이때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이 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지연시켜버렸다. 그 결과 자연에 대한 약탈은 오늘날 우리 모두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일례로 숲의 무분별한 남벌이 원인이 된 1998년 중국의 대홍수는 무려 중국 인구의 20퍼센트인 2억 4,000만 명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되기도 했다. 


저자는 숲의 파괴는 곧 삼중의 파괴라고 말한다. 숲에 사는 생물종과 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그것들이 공동으로 수행해온 생태학적 서비스의 파괴, 마지막으로 숲과 인류가 오래도록 관계 맺어온 감성의 파괴가 그것이다.(149쪽) 그는 무한정한 확대·발전·성장이라는 낡은 이념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생태평화okopax라는 새로운 삶과 경제를 이제는 받아들일 때라고 역설한다. 

생태평화란 타 생물종과 서식지, 생물다양성의 보호가 인류의 삶과 문명의 보호와 직결된다는 사실, 자연의 존속 없이는 인간의 경제적인 삶, 생물로서의 삶 역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 체화하고 생태계 보호 활동을 삶과 경제 활동의 필수 사항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주디스 라이트의 시〈숲〉의 마지막 구절처럼 저자는 이러한 요청의 원천지가 어쩌면 숲 자신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조건 없는 애정을 베풀어온 존재가 우리에게 보내는 이 요청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탐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아 / 더 이름 붙이고 더 알 것들이 있어 / 내가 모은 꽃들 말고도 / 결코 시들지 않을 것― / 그 꽃들을 자라게 하는 원천인 진리가 있어

                                                                  -주디스 라이트,〈숲〉에서


지은이_우석영

1972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골집 울안에 있던 감나무가 신기해 많이 올려다봤다. 나뭇가지에서 눈 녹아내리는 소리에 처음 봄을 알았고, 포도나무의 포도알에서 처음 여름을 알아챘다. 


가을을 가르쳐준 건 대추나무에 달린 붉은 대추알 빛, 모든 걸 버리고 십자가처럼 서 있던 감나무에서 겨울을 배웠다. 젊은 날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무가 그리워 산을 찾아다녔다. 젊음의 불안과 열기를 다스려준 것도 차나무의 잎이었다. 나무에 대한 오랜 사랑을 풀어내며 이 책을 쓴 것도 마호가니 책상 위, 책을 쓸 때 영감을 선사해준 것도 창밖 너머 표범나무였다.  


연세대학교, 시드니 대학교 대학원,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심미적 창조성의 존재론을 연구했다. 철학?사회학 연구자이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의, 환경철학, 문명론, 심미적 창조성 등의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녹색당 선언》에 참여했고, 저서로는《낱말의 우주―말에 숨은 그림, 오늘을 되묻는 철학》이 있으며, 역서로《페어푸드》,《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등이 있다

posted by 아마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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