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2013. 12. 5. 09:29




허구, 기억, 현재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다섯 편의 독일 영화를 통해 히틀러와 히틀러 이후의 독일 역사에 관한 허구, 기억, 현재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살펴보는 책이다. 


영화가 제2차 대전 이후 독일 역사의 자리에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되는지, 과거에 어떻게 개입하고 해석하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다섯 편의 영화를 통해서 독일의 영화사, 기억의 문화사, 그리고 역사에 대한 메타 비평을 하나로 녹여내어 영화와 역사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또한, 독일의 문학과 영화, 역사에 관한 방대한 지식, 이들을 분석하기 위해 참조하고 인용한 풍부한 지성사는 독자들에 훌륭한 지적 성찬을 제공한다.

 

공공의 기억에 대한 생산과 관리를 둘러싼 격렬한 투쟁


 책에 소개되는 영화들은 1980년대 초반 뉴저먼시네마 진영의 다섯 작가가 만든 다섯 편의 영화 즉, 위르겐 지버베르크의 〈히틀러, 한 편의 독일영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알렉산더 클루게의 〈애국자〉, 헬마 잔더스-브람스의 〈독일, 창백한 어머니〉, 에드가 라이츠의 〈하이마트〉 등이다. 


이들 영화는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독일인들의 정체성과 “하이마트(고향)” 등 독일에서 가장 긴요하고 시급했던 몇 가지 쟁점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들 영화를 통해 홀로코스트와 제3제국이 독일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둘러싸고 서독의 역사가들이 벌인 격렬한 논쟁은 역사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집단 기억과 국민 정체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예민해진 감수성을 입증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섯 편의 영화가 만들어진 계기는 1977년 이른바 “독일의 가을”과 1979년 미국 드라마 〈홀로코스트〉의 독일 방영이라는 두 사건이었다. 독일인들이 바더-마인호프 단원들의 요인 납치와 암살 등 극단적인 테러 행위와 이들에 대한 정부의 강압적인 대응으로 초래된 공포 상태, 이른바 “독일의 가을”을 통해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얼마나 음험한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면, 서독에서 방영된 미국 드라마 〈홀로코스트〉라는 미디어적 사건을 통해서는 자신들의 과거가 자신들의 수중에 있지 않다는 사실과 함께 영화라는 매체가 과거에 관한 논쟁을 주도하고 지배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작용했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대한 탁월한 분석

 캐스는 이들 다섯 편의 영화가 이런 충격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곧 과거의 청산과 회수라는 양면적인 임무를 어떻게 수용하고 이들 영화가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담론적 힘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를 정교하게 분석한다.  


 지버베르크의 〈히틀러, 한 편의 독일영화〉 : 히틀러를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의 투사체이자 무수한 이미지들로 환원하면서 “평범한” 독일인들의 무고함이라는 허구를 문제 삼았지만 동시에 독일인들이 상기하고 돌파해야 할 트라우마로서 홀로코스트보다 스탈린그라드의 패배에 무게를 둔다.


 파스빈더의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 서독의 초창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유토피아적 이상의 파괴를 힐난하였지만 친유대주의의 허위성을 폭로하기 위한 기획으로 반유대주의의 금기에 도전하면서 둘 사이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든다.


잔더스-브람스의 〈독일, 창백한 어머니〉 : 개인의 자전적 기억, 특히 여성과 어린이로 대변되는 소외된 시선으로 전쟁의 경험을 재규정하려 하였지만 부모세대에 대한 날선 비판을 공감과 안타까움으로 전화시킨다.


클루게의 〈애국자〉 : 과거에 접근하려는 허구의 역사 교사가 벌이는 애처로운 행동을 자구적으로 재현해 희화화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현재의 부주의한 취급을 풍자했지만 내셔널리즘과 “애국심”의 분리를 통해 “독일” 국민의 정체성 회복을 꾀한다. 


 라이츠의 〈하이마트〉: 나치 이데올로기에 복무했을 뿐만 아니라 전후 독일의 과거를 “표백”하는 데에도 동원되었던 “하이마트(고향)”에 대한 이상화된 시선을 해체했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라는 매체는 다양한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조건을 반영하면서 

사회적 담론의 형성에 작용하는 하나의 동인 


 이렇게 캐스는 이들 다섯 편의 영화를 입구 삼아 과거에 대한 독일인들의 태도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궤적을 추적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재현에서 영화는 단순히 현실의 반영이거나 이미 산출된 정보들을 재현하는 수동적인 도구가 아닌,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논쟁과 의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매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히틀러의 시대를 살았든 살지 않았든 우리는 모두 한 무더기의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속에서 그 시대의 영상과 소리에 동참한다. 영화적 재현은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니 사실상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형성한다는 편이 더 옳은 말일 것이다. 오늘날 이미지는 기술력을 사용한 기억의 저장고 역할을 한다. 


역사에 대해 폭넓은 접근이 가능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기억에 대한 권한이 이런 이미지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있다. 최근 우리는 공공의 기억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격렬한 투쟁들을 목격했다.”



지은이

안톤 캐스(Anton Kaes, 1945~ ) - 안톤 캐스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8년부터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의 비교문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1981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독일학과와 영화와 미디어 학과를 오가며 연구와 강의를 이어왔다. 문학과 영화를 아우른 비평이론을 바탕으로 무성영화, 독일 영화사, 미국의 필름 누아르, 트라우마와 문화적 기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포괄한 캐스의 연구 활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학제적이고 역사적인 접근법이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 독일에서 제작된 다섯 편의 영화를 통해 독일의 영화사, 기억의 문화사, 그리고 메타 역사적 비평을 하나로 녹여내면서 역사와 영화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조명한 『히틀러에서 하이마트까지』는 캐스의 지적 편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프리츠 랑의 고전 영화 〈엠〉을 하나의 작품이 아닌 역사적 사건으로서 재해석한 M.(London: British Film Institute, 2000)에서,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트라우마가 전쟁 영화들을 통해 어떻게 재현되고 기억되고 대면되는지, 동시에 영화의 기술적 변화가 전쟁의 기억을 대하는 태도에 근본적으로 어떤 변화를 초래하고 사회의 심리적 기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분석한 Shell Shock Cinema: Weimar Culture and the Wounds of War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에서도 그는 이런 지적 모험을 이어갔다. 최근에 캐스는 1930?40년대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독일계 유대인 영화작가들의 “이중적 정체성”이라는 문제와 다큐멘터리 영화들에 관한 글을 준비하고 있다.


옮긴이 

 김지혜 - 서강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양대학교,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세종대학교에서 영화와 역사를 주제로 강의했고 현재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 『영화, 역사』, 『역사 속의 매춘부들』, 『로버트 단턴의 문화사 읽기』, 『잭 구디의 역사 인류학 강의』,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공역), 『국민의 대중화』(공역)가 있다.

posted by 아마데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