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2013. 12. 5. 05:35



<< 책 소개 >>


인문의학자가 만난, 한센인 할머니의 삶와 그녀의 시


필자가 만난 한센인은 그 당시 81세의 여성이었다. 발병은 19세 때 임신과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한다. 필자와 처음 만났을 당시, 그 여성의 가장 큰 문제는 한센병* 한국한센복지협회에 의하면 2013년 현재 한센인 정착촌만 91개 마을로 4,142명이 살고 있으며, 시설과 재가까지 합치면 약 12,323명이 한센사업대상자로 등록되어 있다.


이 아니라 한센병으로 인한 심리적인 고통이었다. 그 고통의 실체는 한센병 발병으로 겪어야 했던 세 번의 이별이었다. 자신 때문에 극심한 심리적인 고통 속에서 갑자기 사망한 어머니, 사랑하는 남성과의 강제적인 이별,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한센병 환자이기 때문에 키우지 못하고 입양 시킨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 아들의 존재를 60여 년 동안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던 죄의식이 현재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한센병으로 인하여 얼굴 모습이 상당히 변형되어 있었으며, 정상적인 마디를 지닌 손가락이 없었다. 발에서는 항상 양말을 신고 있어도 진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구술에는 변형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으나 현재까지 지속되는 고통의 원인으로 한센병을 언급했다. 표면적으로는 질병이 드러나지 않았으나 한센병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생애의 마지막 나날. 한 한센인 할머니는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고, 그녀는 시를 통해 어떻게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삶의 문제에서 자유롭게 되었는가?


이 책은 한센인 할머니가 구술과 시쓰기를 통해 경험한 치유의 과정이 진솔하게 드러나고 있는 치유 시학적 기록이다. 기록 보존이나 자료 수집, 학술적 논문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변화 과정을 할머니와 나눈 대화를 통해 재구성하였다. 60여 년의 병력을 지닌 한센인 여성은 자신의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대담이 진행되면서 점차 자신의 삶을 관조적으로 구술하기 시작하였고, 필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시 11편을 완성하였다. 


지금까지 한센인에 관한 연구와 기록에서는 한센인 개인의 삶에 대한 고찰이 없었다. 한센병으로 인하여 생기는 삶의 문제를 질병 중심의 시각에서 보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삶과 문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김성리 교수(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한센병에 대한 질병 정책이나 마을 공동체의 형성, 그리고 기록 보존이라는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시가 실제로 치유성을 지니고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지를 알고자 하였다. 기록 보존이나 자료 수집의 차원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한센인으로 살아왔던 삶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몸의 병을 치료했다고 해서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의학은 모든 고통을 치료하지도 못한다. 질병의 치료 과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몸의 변형이나 치료의 흔적은 한 사람의 삶을 고통 속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이때의 고통은 치료보다 치유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치료는 진단을 통해 의학의 기술로 병을 낫게 하는 것이지만, 치유는 돌보는 것, 안아주는 것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의학은 과학적인 기술로 병을 낫게 하지만, 문학은 상처받은 내면을 돌보고 안아줌으로써 상실감과 절망감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책이 가진 의의는, 다음의 저자의 말로 요약된다. “시는 마음을 치유한다. 그러나 실제로 치유는 시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덤으로 얻었다. 시는 치유로 가는 문이라는 걸 알았다.”(에필로그) 



<< 책의 내용: 한센인 할머니의 생애 >>


이 책에서 필자가 만난 그녀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의 내용 전개이기도 하다.


† 이말란은 1927년 4월 20일 울산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남겨진 재산이 있어서 가세는 넉넉하였다. 오빠와 두 언니가 있었고,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으로 가서 살고 있어 거의 만나지 못했다. 해방 후에는 오빠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오빠 사후에 오빠의 유언을 받들어 일본인 올케언니가 다녀갔다. 


† 한센인 여성의 이름은 세 가지였다. 호적에는 이말란, 공공요금 청구서에는 이숙자, 마쓰시타에게는 요시코로 불리었다. 


† 부산고녀에 재학 중이던 17세에 일본인 대학생 마쓰시타를 만났다.


† 18세~19세에 한센병이 발병했다. 의학적으로 진단받지 못하여 정확한 발병 시기를 모르지만 18세에서 19세 되던 시기로 추정하였다. 


† 19세인 1945년 해방 직전에 마쓰시타의 부모에 의해 마쓰시타와 헤어지고, 같은 해 8월에 미혼모로 아들을 낳았다. 


† 194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주위의 권유로 아들을 일본 대판(오사카)에 살고 있는 김해 출신 재일한국인에게 입양 보냈다.


† 1946년 아들을 입양 보낸 후 혼자 살기 힘들어 20세 겨울에 당시 26세 김철수 씨와 결혼하였다. 남편이 “많이 배워 똑똑하고 사리를 잘 알아 집단에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해결했다. 위원장으로 마을 일을 참 많이 봤다”고 회고하였다. 김철수 씨는 83세에 별세하였다.


† 23세 때 딸을 낳았다. 이 딸은 10세 되던 해에 미감아로는 공부를 계속하기 어렵고 양육하기에는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고아원으로 보냈다가 울산으로 입양시켰다. 외손자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말란 씨의 존재를 알고 찾아왔었지만, 사위는 여전히 이말란 씨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라고 했다. 


†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2007년 당시 41세인 작은딸은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 혼자 들어온 아이로 양녀로 입적하여 키웠다.


† 현재의 마을에서 주로 닭과 돼지를 키우며 살다가 부산?대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로 보상을 받아 경제적으로 나아졌다고 했다. 이후로는 보상금과 정부 보조금, 그리고 약간의 임대료로 생활하고 있었다.


† 이말란 씨는 한센병 이후 한 곳에 정착하여 살지 못하고 강제적인 이주가 자주 있었다고 구술했다. 잠시 머물다 쫓겨난 곳은 지명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정착하다가 강제로 이주한 지명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주 경로는 ‘울산(발병) - 울산(바닷가 외진 마을) - 용호동(잠시 머물렀음) - 을숙도 - 용호동(을숙도에서 나와 잠시 머무름) - 현재 마을’


† 2006년 6월, 저자 김성리와 처음 만났다. 그해 7월부터 2007년 2월까지 20차례에 걸쳐 김성리에게 자신의 삶을 구술하였으며, 시 11편을 함께 지었다. 


† 2009년 6월 5일 소천하여,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구술과 시쓰기, 치유로 가는 문


이 책은 시와 구술사가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는지 알기 위하여 한센인 여성과 만나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한센병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천형)로 표현될 정도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만드는 질병이다. 그러나 한센인은 의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치료와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소외와 격리, 그리고 강제 수용의 대상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한센인에 대한 강제 수용은 치료의 목적보다 그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하여 격리하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한센병에 대한 의학적 사실과는 관계없이 한센인들에 대한 사회의 눈길은 냉담했다.


심지어 이웃 마을 주민들은 한센인 정착촌이 그들의 이웃에 세워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문둥이가 아이에게 해코지 한다는 속설 때문에, 그리고 한센병의 전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들은 한센인들을 공격하였고, 마을에서 추방하였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이 책에 나오는 한센인 여성도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어디에서도 정착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그것은 김정한(소설가)의 「모래톱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과도 흡사하다. 실제로 소설 속에 나오는 내용을 한센인 여성 역시 비슷하게 경험했다는 증언이다. 


“그긴갑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가. 요쯤(여기쯤)은 바다고 또 한쪽은 땅인디, 한센 환자들이 거기 살려고 했제. 그런데 주민들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데 너거가 왜 오노 하고 막았다. 살라고 하는 한센 환자들하고 못 들어오게 하는 사람들하고 크게 싸웠제.” (140쪽)



<< 저자 소개 >>


김 성 리


문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7년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문학이 지닌 치유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본인의 두 전공을 융합하여 자신이 명명한 “치유 시학”을 한국연구재단의 학술 지원을 받아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에서 연구 중이다. 


치유 시학을 연구하는 틈틈이 샤머니즘과 신화가 지닌 치유성을 시와 연관해서 공부하고 있으며, 관련 과목을 인제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현재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으며, 인제대학교 한국학부에서는 <현대시인연구>, <시와 치유>를,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에서는 <문화와 예술>, <의학과 문학>, <의학과 창의적 상상력> 등 인문학 분야의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연구 논문으로는 「김춘수 무의미시의 지향적 체험 연구」, 「예술가의 삶의 형상화와 그 의미」, 「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현대시의 치유시학적 연구」, 「시치유에 대한 인문의학적 접근-한센인의 시를 중심으로」, 「치유시학의 관점에서 본 간호의 의미」, 「한센인의 생애구술과 치유」등과 『김춘수 시를 읽는 방법』, 『문장으로 배우는 한자』(공저), 『엄마의 책방』(공저)이 있다.



북트레일러 : http://youtu.be/C6SwkzWpeZY


posted by 아마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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