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아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12.05 :: 봄아필, '프랑켄슈타인 프로젝트' 출간
신간소개 2013. 12. 5. 08:00



뱀파이어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 아바타 놀이와 팬픽의 시대.

이제 허영심을 가진 게으른 불량청년이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이다. 


2013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 사업 선정작


 뱀파이어가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판타지의 주인공이 된 것은 정신적 동반자(soulmate)를 간절히 원하는 현대인의 열망을 반영한다. 그리고 괴물, 싱글맘, 호모섹슈얼, 남장여자 등 ‘타자’로 명명되는 존재들이 이제 대중문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게으르고, 허영심 많은, 현실 안주적인 태도를 가진 ‘불량청년’. 하위문화와 새로운 대중문화를 가진 ‘불량청년’은 이제 비상과 준비와 수양의 근대적인 청년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이다.


 문화를 둘러싼 이분법,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문학과 문화, 리얼리티와 가상, 실제와 재현 등의 구분법을 의문시하고,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텍스트들 속에서 ‘타자’와 문화에 대해 사유해보았다. 무엇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또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불러온 타자에 대한 관심을, 그간 인간이 아닌 영역으로 내쳐졌던 존재들과 그들의 일상이 만들어낸 풍경을 중심으로 수렴해보았다. 한국사회의 일상 층위에 대한 비평적 개입 가능성을 넓히는 한편, 사회적 타자의 대표로 지목되고 있는 청년(/청년세대, 청년문화) 문제에 집중해 보았다. 청년의 사회적 타자화 과정을 고찰하고, 그럼에도 남겨진 가능성을 가늠해보고자 했다. ‘낙관적/비관적’ 전망을 적확하게 드러내고, 근대의 기수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이방인의 하나로, 이방인들과 함께 여기에 청년이 있음을 다시 확인해보고자 했다. -서문 중에서/소영현


1. 뱀파이어는 왜 로맨스 판타지의 주인공이 되었나. 

- 뱀파이어는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과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는 소울메이트(soulmate)와 만날 수 있다면 인간이든 뱀파이어든 혹은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진 아바타든 상관치 않는 현대인의 간절한 열망을 반영한다. 


 2010년 등장한 <아바타>에서 진짜 세계와 가짜 세계, 이곳과 저곳의 구분과 같은 가치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 영화는 우리에게 폭력이 난무하는 끔찍한 현실쯤은 버려도 된다고, 현재의 ‘나’가 있는 현재의 이곳을 버리고 다른 ‘나’가 되어 다른 세상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바타’는 다른 별의 다른 종족과도 교감할 수 있는 열린 존재로서, 그들에게 이성과 합리성 내지 과학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교감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하나의 자아에서 다른 자아로 옮아가는 것이었으며 다른 자아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자아는 형성된다기보다 언제나 여러 개로 분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자아가 특정하게 발현되는 하나의 성격과 같은 것이라면, 사람은 누구나 다중성격이거나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조건과 환경의 차이는 각기 다른 자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고대 힌두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제는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사이버 캐릭터를 지칭하게 된 ‘아바타’를 염두에 두고 청소년기에 형성된 그 자아가 진짜 자아인지,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 질문한다. 


 한편 꽃미남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영화와 애니가 인기를 얻고 있다. 슈퍼 히어로 대신, 소녀를 사랑하는 시공간 초월의 낭만적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뱀파이어가 등장했다. 뱀파이어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고 영원을 살며, 인간과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인간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뱀파이어는 이제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인간보다 인간다운 존재로 변모해간다. 


 인간이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인간의 고독이 깊어지면서 굳이 인간이 아닐지라도 같은 것을 소통할 수 있는 소울 메이트를 만나길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깊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 욕망, 고독한 영혼들의 종속 갈망은 이질적인 존재와의 만남도 서슴지 않게 했다. 고독한 영혼들이 원하는 아바타 놀이 이상의 것, 절망적으로 품어내는 변신 혹은 접속에 대한 갈망은 ‘이질적인 채로’의 공존을 고민하는 자리에서만 출구를 찾게 된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욕망과 윤리, 열정과 죄의식,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를 되묻고, 욕망이 불러온 결과에 대한 후회와 책임을 고민하면서 인간 이후의 인간을 묻는다. 

 한편 뱀파이어가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는 동안, 악당의 면모와 감염의 공포는 좀비에게 떠넘겨졌다. 뱀파이어와 좀비 사이, 히어로와 몬스터 사이, 혹은 로맨스 판타지와 스릴러 호러 사이에는, ‘다른 존재들은 어떻게 사는가’, ‘다른 존재들과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담겨 있다. 살인기계로 디자인된 존재가 살인을 거부하거나 영혼 없는 괴물이 되는 문제로 고민에 빠질 때, 인간이 되물어야 할 질문들이 뱀파이어의 것이 되어버린다. 인간의 세계에서는 사라진 존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 완소남 뱀파이어 신드롬의 숨은 이유와 좀비에 대한 혐오와 공포의 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영화, 소설, TV드라마 등 대중문화 작품 속의 ‘타자’ 분석을 통해 대중문화와 현대 사회를 관계를 흥미롭게 조명하다. 

- 괴물, 싱글맘, 호모섹슈얼과 남장여자, 질병과 죽음의 공포, 경계 위에 선 존재들. 우리는 우리와 다른 ‘타자’를 경계한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누가 그들을 ‘타자’라고 명명할 수 있으며 누가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프랑켄슈타인’을 빼놓고 괴물에 관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에 관한 소설이나 영상물을 접하기 전까지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괴물은 이름 없는 존재로 등장하며 이름이 없기 때문에 괴물은 그저 괴물로만 기억된다. 아니 끔찍한 이미지로 기억될 뿐 영원히 망각된다. 기억 속의 괴물은 언제나 흉측한 공포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괴물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며 인간의 관점에서 그(것)들은 동일한 ‘종’으로 분류된다. 총칭해서 공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괴물’-‘경계인’-‘타자’-‘사이보그’-‘외계인’-‘드래곤’ 등등 = 공포의 대상. 이런 연결-짓기의 연쇄가 말해주는 것은 여기서 무엇이 타자이고 무엇이 괴물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은 인간이 지우고 싶거나 거부하고 싶은 혹은 부정하고 싶은 형상을 ‘디 아더스’의 영역에 밀어 넣고 한데 뒤섞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타자’에게 외친다. 너희가 타자라서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혐오스럽기 때문에 타자이며 그 때문에 배제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타자’ 혹은 ‘괴물’이 만들어진 사정은 모두 지워버린 채로 말이다. ‘타자’를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위해 상대의 삶을 빼앗는 행위가 ‘용기’로 칭송받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중문화 속에는 이러한 ‘타자’를 조금씩 수용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면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매체와 현실 사이에는 아직 조금의 차이가 있고 개선할 요지가 분명히 있다.

 

 오늘날 ‘싱글맘’은 과거 가부장제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던 미혼모가 다시 정의된 것이다. 우리는 싱글맘에 대해 호의적이 되었다. 대중문화에서 싱글맘은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현실사회에서 호주제 폐지, 비혼이라도 입양이 가능해진 입양 절차의 변화 등 시대적 변화와 일맥상통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중문화 속에서 그려지는 것만큼 실생활에서 편견이 없지는 않다. 그들이 정상가족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낄 지점까지 만이라도 우리의 인식이 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불편한 시선은 홍상수, 박찬욱, 봉준호의 영화 속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나타난다. 세 감독의 영화는, 사회를 유지하는 가짜 신념 같은 것에 환멸을 느끼고 개인의 문제에 좀 더 관심을 두고자 하는 1990년대 이후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되 개인의 욕망과 신념을 통과한 세상을 바라본다. 저자는 영화 속에서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문제 삼는다. 영화 속에서 여자는 욕망의 배출구나 죄의식의 해소처로 등장하는데, 이 점이 불편하다. 여자들은 사회의 어디에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


 또한 ‘동성애 커플’이 대중문화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TV 드라마에서 동성애 커플이 자주 나오고 거부감이 없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 주변인이 커밍아웃을 한다면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양한 성을 인정하는 것이 머리로는 받아들여지나 무의식적으로 꺼리는 행위를 비판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요청한다.


 또한 여성이 남장을 하고 이중생활을 하는 ‘남장여자’가 신드롬을 낳고 있다. 그들은 주로 팬덤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에서 등장하며, 내용상 후에는 성별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이해를 받는다. 저자는 남장여자가 여성들이 사회적 생존을 위해 부득이한 남장 가면을 쓴 것이라면, ‘여장남자’는 더 불편하다고 인식되는 그 차별성도 문제 삼는다. 


 또한 의사를 복합적 캐릭터로 형상화하고 있는 의학드라마는 의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전문가와 비전문가, 조직과 개인의 경계에 놓인 현대인의 곤혹스러운 고민을 풀어놓으며 나아가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 병든 몸과 죽은 몸에 관한 인문학적 질문들을 던진다. ‘법정공방으로 이어지는 의료행위’는, 의사의 일상이나 의학지식을 다룬 의학드라마를 넘어 병원의 조직문화를 폭로하고, 한국사회의 구조적 폭력성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의학 드라마의 사회비판적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우리가 ‘타자’라고 칭하며 경계를 두는 것에 ‘질병에 걸린 환자’도 있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 질병으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 사회로부터 내몰리는 환자들과, 치료약을 둘러싼 권력과 비리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우리 인간들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환기시킨다. 병에 들러붙은 편견들은 사실 ‘죽음의 공포’의 변형적 양태들이며, ‘병을 둘러싼 편견과 감염이 야기한 공포’는 인간이 죽음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의 정의를 다르게 볼 것을 요구한다.


 또한 ‘나꼼수 열풍’을 통해 정치에 대해 전 세대에 걸쳐 관심이 확산되고 있으며, 정치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음을 말한다. 나꼼수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본질에 닿아 있고, 말할 수 있는 권리 혹은 자유를 획득해 우리 사회에 무수하게 그어져 있는 선들과 ‘경계가 숨긴 권력의 위계’를 모두가 보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따라서 저자는 ‘같은 게 없는 세상을 꿈꾸며’,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경계 위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와 존재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들이 그저 환각 혹은 환상인 것은 아니다.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생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며 ‘세상에 같은 것은 없다. 같지 않으며, 같을 수도 없지만, 같이 있(어야 하)는 것들의 세상이 우리가 사는 이곳이다.’고 말한다.  



3. 근대의 청년을 넘어서는 새로운 ‘불량청년’의 시대가 오다.

- 청년백수와 알바 세대, 비정규직으로 생존의 위기에 처한 현대 청년들, 하위 문화의 영향력을 펼치며 그들의 존재를 확인시키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팬픽을 통해 새로운 소통과 열림의 가능성을 모색하다. 


  1987년 이후 민주화 시대, 1990년대 이후 탈냉전·탈이데올로기·전지구적 자본화를 거쳐, 압축적 경제성장이 가져온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고 소비문화에 친숙한 ‘신세대’가 등장한다. 이들은 전쟁과 혁명을 세대 체험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공동체와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윤리적 덕목으로 여기던 사회적 합의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새로운 청년세대이다.

 우리 사회는 IMF 이후 경제·사회적 전환국면을 맞는다. 정치경제가 보다 중요해지며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현실 속에서 2000년대 이후의 청년은 세대로 지칭될 수 있는 특정한 그룹에 토대를 둔 연대의식 자체의 존속이 어렵다. 젊은이들은 원자화되고, 생존의 최전선에 내몰린다. 그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부추기던 자기계발의 유행도 지나가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사회부적응자 또는 비정규직으로 내몰린다. 그들은 88만원 세대, 알바 세대로 불리며 청년백수, 취업준비생, 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


 현대문학 속에서 이런 청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의 문학에서 청년백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군은 하나의 경향성을 형성하며,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국소설에서 ‘과도기적 시간’을 살던 청년들의 삶은 점차 더 척박해진다. 한국소설의 청년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존재로, 조절할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는 존재로, 경쟁논리로부터 도피하는 존재로 포착된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소설은 유기적 서사구성 방식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여주며, 현실에 맞서 ‘저항 1: 소외에 자기소외로 맞서기, 저항 2: 체제폭력에 자살선언으로 저항하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연대 없는 청년 세대가 등장하게 된 것, 청년이 우리의 미래가 아니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한계상황에 처했으며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난국을 맞닥뜨렸음을 의미한다. 더 이상 청년 문제가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모두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 된 것이다. 


 한편 연대 없는 청년들은 그들만의 하위문화를 양산해내며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 ‘신세대’는 일상 층위에 밀착되어 있는 스타일, 생활양식, 취향을 가지며, 지배적 주류 규범으로부터의 탈피를 지향하는 반문화의 성격을 띠고, 엄숙주의가 사라진 뒤 들끓는 욕망과 개인의 자유를 표출한다. 또한 1998년 일본문화의 전면 개방으로 ‘하루키 신드롬’으로 대표되는 취향의 시대가 도래한다. 


 청년들은 인터넷 등 과학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국경을 넘어선 즉각적인 문화적 소통과, 문화의 소비주체가 생산의 주체로 나아가 프로슈머로 변화하는 일상 차원의 문화에서 살아간다. 근대화 이후 청년의 역할이 강조되던 시기에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서 ‘불량청년’으로 분류되었던 청년군은 이제, 사회문화적 문맥 속에서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청년상으로 부상한다. 그들의 억눌린 현실참여에의 욕구는 유의미한 역동이 되어 분출된다. ‘불량청년’들은 기성의 세계관과 윤리관에 저항하는 반문화적·하위문화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분리·대립되어 갔던 엘리트 지식층과 대중 사이의 간극을 일상과 문화차원에서 좁히는 가교역할을 떠맡는다.


 한편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는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 패턴, 세대 문화와 계급 정치의 이질적 절합을 포함하며, 문화와 주체를 둘러싼 다층적 문맥에 격렬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

 인기 아이돌의 팬들이 주축이 되는 팬픽에서는 동성애, 동성애혐오증, 게이 캐릭터가 종종 등장한다. 이는 로맨스 관계를 전면화 하기 위해 활용되는 낭만화의 기제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팬픽의 창작·향유층은 동성애에 덧씌워진 젠더 차별적 현실논리를 탈성애화 한다. 또한 가상공간에 기반한 커뮤니티는 사회적 조건이나 지위에 의해 외적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취향과 필요 등 개인의 욕망에 기초해 스스로 선택하는 자발적 커뮤니티이다. 


 인터넷 소설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글쓰기는, 규모가 커짐에 따라 디지털 환경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며 인기순위를 매겨 사이버머니(결과적으로는 실물의 화폐)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폐쇄적인 커뮤니티 문화 너머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말한다. 


 이렇듯 팬픽문화는 친밀성과 적극적인 상호 작용에 바탕하고 있으며 참여, 개방, 공유의 이념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뉴미디어적 문화생산의 한 사례이다. 이로부터 뉴미디어와 하위문화의 생산적 결합을 가능하게 할 가능성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는데, 팬픽 프로슈머의 예기치 못한 미디어 융합 및 재점유를 통한 컨버전스는 그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에 처한 하위문화의 정치적 가능성은 컨버전스를 통해 보다 폭넓고 긍정적인 지향성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 저자소개 >>

소영현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문학평론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3년 계간 <작가세계>에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근현대 문학, 문화, 주체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문학청년의 탄생', '부랑청년 전성시대', 비평집 ??분열하는 감각들', '감정의 인문학'(공저),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공편저) 등이 있다.

posted by 아마데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