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걀 배달하는 농부
〈사람이 뭔데〉의 전우익, 〈빌뱅이 언덕〉의 권정생을 한데 만나는 즐거움
흙을 만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천생 농부가 보내는 땅의 노래,
“당장 그가 거둔 쌀로 지은 밥을 먹고 싶다”
〈나는 달걀 배달하는 농부〉는 일주일에 두 번 순천의 소비자들에게 직접 키워 낸 유정란을 배달하는 일을 11년째 해오면서 농부 김계수가 느끼고 관찰하고 생각한 것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가 세밀한 관찰과 탁월한 묘사력으로 마치 눈앞에 펼쳐지듯 풀어낸 닭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우리 인생살이와 다르지 않지만, 풀 한 포기에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닭의 모습에서 끝을 모르는 우리의 탐욕을 한없이 부끄럽게 하고, 먹을거리 하나만이라도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겠다는 그의 각오는, 우리가 먹는 음식 하나하나를 허투루 생각할 수 없게 한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울에서 13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더 늦기 전에 머리보다는 몸이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해보려고 2001년 가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내려와 닭치고 벼짓는 농부가 되었다.
농부의 일차적 자부심은 수입의 크기가 아니라 농사를 얼마나 잘 지었는가에 달렸다고 믿는 그는 농사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땅을 헤치는 농법은 일체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다. 속도와 효율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가 세운 원칙들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너무 고지식하다는 핀잔을 들을 만하다. 그러나 그는 수확량을 늘리고, 해충을 방지한다는 핑계로 토양살충제를 뿌리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오히려 쌀알 한 알, 배추 한 포기에도 정성을 쏟아 누구에게 먹여도 부끄럽지 않은 먹을거리를 거두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고, 땀을 흘린 만큼 돌려주는 자연에 조응하며, 병아리 기지개와 찔레 꽃잎 하나에도 기쁨을 느끼는 천생 농부다.
세밀한 관찰과 뛰어난 묘사력,
기억 속 어딘가에 묻힌 한 순간을 끄집어내는 힘
이 책에는 단순히 닭을 키우고, 농사를 짓는 일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시골에서 자라나 고향에 대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허전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도시에서 잃어가는 감수성을 되살려주기도 한다. 여유롭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지만, 어느덧 나이를 먹고 보니 추억 아닌 것이 없다. 그의 글은 소 먹이러 나간 아이들끼리 논두렁에서 놀았던 기억이나 양지 바른 무덤가에서 한가로이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누워 있던 기억 등 생애 최고의 순간, 잊을 수 없는 장소, 가장 힘들었던 순간 등 유년 시절의 기억 속 어딘가에 묻힌 한 순간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어디 유년 시절의 기억뿐일까. “물에 후줄근하게 젖은 몸으로도 기어코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투명한 살색 부리와 발가락, 태어난 지 두세 시간 된 송아지가 일어서 보려고 몸부림칠 때 흔들거리는 네 다리와 하얀 앞니 두 개, 암탉이 알을 낳으면서 전신의 힘을 쏟느라 내는 신음 소리, 때 이른 서리를 맞고 뜨거운 물 뒤집어 쓴 모습을 하고 있다가 햇빛을 받아 다시 파랗게 본색을 되찾고 마는 김장 배추와 무, 폭우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텨 준 논두렁 등등. 날마다 계절마다 메뉴를 바꿔 가며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을 보다 보면 권태를 느낄 틈이 없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 책에는 그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글과 함께 윤광준 사진작가의 매혹적인 감성으로 저자의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추천사
그는 달걀 한 알, 배추 한 포기도 허투루 돌보지 않는다. 우직하게 정성으로 보살펴 키운 작물로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먹이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생명을 먹이는 농사조차 수익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친 파도에 대척하는 큰 배가 되기보다 작은 섬이 되고자 한다. 화려하게 배를 키우는 데만 관심이 커지는 요즘 세상에 온몸으로 파도를 버텨 내는 그의 외로움이 코를 시큰하게 하지만, 당장 그가 지은 쌀로 만든 밥과 벌레 먹은 배추로 담근 김치에 소주 한 잔 나누고 싶다.
―안도현(시인)
삶의 고단함을 품고 살지 않는 이가 어디 있으랴만 최근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이토록 맑은 표정을 지닌 이를 나는 보지 못했다. 그에게서는 중년의 불안과 공허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제 스스로 선택한 농사일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채워진 투명한 낯빛만이 도드라진다. 움직인 만큼 돌아오며 퍼부은 만큼 되돌려주는 땅의 순리를 알아버린 여유임을 알겠다. 그의 일상만큼 진솔하고 감동적인 글 또한 매력적이다. 젖은 솜처럼 피곤한 몸을 추슬러 한자 한자 써내려간 부지런함은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다.
―윤광준(사진작가)